큰아들놈이 다음달이면 벌써 군대를 간다..치열하게 살다보니 벌써 군대를 갈 나이가 되었으니 세월이 참 빠른것을 느낀다..아들과 한 수많은 여행중에 이번여행은 참 의미가 깊게 느껴진다..

부관페리에서 지는해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긴다









미모스소가와 공원과 단노우라 전장 흔적이 같이 붙어 있어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된다..
길 건너편에 간몬해협을 지날수 있는 해저터널이 있는데 모지코로 통한다..사람은 무료 횡단이 가능하고 자건거는 요금을 받는 모양이다.
큰 대포와 동상들이 멋지다..바로 옆에 식당인지 카페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먹으며 간몬해협을 감상할 수 있는 건물이 있다..

이번여행의 마지막 관광지다..이제 호텔에 맡겨둔 짐을찾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리 쵸부번의 가신격인 니시 유키나가(西雲長)의 저택 터으로 높은 산을 등진 약 3만 평의 부지에 연못을 중심으로 서원, 다실, 작은 폭포가 있어 사계절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회유식 일본정원입니다.

주소
쵸후 쿠로몬 히가시마치 8-11, 시모노세키시, 야마구치현
교통 안내
(1) JR 시모노세키역에서 버스 20분
(국도선 버스)
→[시립미술관 앞] 버스정류장에서 도보 1분
(2) 시모노세키 IC에서 차 20분
(국도 9호 경유)
홈페이지
http://www.city.shimonoseki.yamaguchi.jp/kanko/frame/mapguide_choufu.html#choufuteien
문의처
조후 정원 TEL: 083-246-4120
-야마구치 트래블 가이드 인용-

입장료가 200엔 있으며 30분~40분정도 관람랄 수있다..라무네사이다 한잔하고 더위를 식히며 천천히 둘러 보았다..그냥 초후모리의 마지막 행선지이다..꽃들을 늘 관리하여 계절별로 즐길 수 있다..






조카마치(일본어: 城下町)는 일본에서 센고쿠 시대 이래로 영주의 거점인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로, 성의 방위시설이자 행정도시, 상업도시의 역할을 하였다. '성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지만, 에도 시대 이후에는 성이 아닌 행정시설인 진야를 중심으로 생겨나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코잔지에서 초후정원으로 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다..코잔지에서 초후정원까지 15~20분정도 걷는데..작은 개울을따라 쭉 내려가면 된다..5월말인데도 부산의 한여름처럼 더워 조금 힘들다..중간에 조그만 카페도 있으니 아이스크림이나 냉커피 한잔 마시며 쉬었다 가도 좋을 듯하다..

'일본-기타큐슈&시모노세키 > - 19.05.29 ~ 06.0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모스소가와 공원(단노우라 전장 흔적)  (0) 2020.04.18
초후정원(조후정원)  (0) 2020.04.18
코잔지(고잔지)  (0) 2020.04.18
초후모리 저택  (0) 2020.04.18
미야노우치초  (0) 2020.04.17








일본 혼슈[本州] 야마구치현[山口縣] 시모노세키[下關]에 있는 사찰.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인 1327년 조후쿠사[長福寺]로 창건되었고 1650년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불전은 당나라 건축형태로 지어졌으며 국보로 지정되었다. 조후[長府] 지방의 토족이었던 모리[毛利]를 위한 사찰로, 모리가(家)의 묘를 모시고 있다.

경내에는 모리가의 가신이자 메이지유신을 이끈 다카스키 신사쿠[高衫晉作:1853~1877]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조후 모리가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돌비석이 남아 있다. 막부시대에 모리의 추적을 받던 상대 장수가 할복자결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초후모리 저택에서 5분정도 도보로 걸으면 나오는 사찰이다..조용하고 고즈넉하며 사람이 많지는 않다..잠깐 둘러보기 좋으며 사찰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나무내음이 상쾌하다.




















헤이세이 36년, 쵸후 모리가 14대 모토토시에 의해 세워진 저택으로, 메이지천왕의 임시 별궁으로도 쓰였습니다.
중후한 안채와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순화풍의 정원이 지난날을 떠오르게 합니다.
서비스로 따뜻한 차도 마련되어 있사오니, 쵸후를 산책하실 때 휴게소로 써주시길 바랍니다.

주소
쵸후 소우샤마치 4-10, 시모노세키시, 야마구치현
교통 안내
(1)JR시모노세키 역에서 버스 23분
→[조카마치 쵸후]버스 정류장에서 도보 10분
(2)JR 쵸후 역에서 버스 10분
→[조카마치 쵸]버스 정류장에서 도보 10분
(3)츄고쿠 자동차도로 시모노세키 I.C에서 차 20분
홈페이지
https://shimonoseki.travel/
문의처
쵸후 모우리저TEL: 083-245-8090


웅장한 초후모리 저택에 도착했다
당시의 권세와 위세를 느낄수 있었다..
임진왜란과 근대사까지도 개입했다고 하니 대단한 가문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한데도 저항 했다고 하니 대단한 가문이다..






미야노우치초

지도에는 미야노우치초 라고 되어 있는데 조그만 공원이다
담배도 한대피고 조용히 쉬어갈수 있는 곳이다..
이날은 멋진 도베르만과 개의 주인인 노신사를 만났다..
관부선(부관페리를 일본에선 관부선이라 한다)을 타고 부산에도 자주 오신 분이라 한다..

한국인들은 잘 오지 않는 곳인거 같다.
누구나 들어가서 쉴 수 있는 곳이다..

'일본-기타큐슈&시모노세키 > - 19.05.29 ~ 06.0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잔지(고잔지)  (0) 2020.04.18
초후모리 저택  (0) 2020.04.18
이미노미야신사-시모노세키  (0) 2020.04.17
간몬대교  (0) 2020.04.17
조선통신사 상륙 기념비  (0) 2020.04.11







이미노미야 신사

초후모리 저택으로 향하기전 작지도 그렇다고 크지도 않은 신사가 있다..

고즈넉하고 조용하다..
특이한건 큰 닭들이 여유있게 마당에서 노닐고 있었다..수시로 "꼬끼요"하면서..

유래와 역사는 따로 검색해보기 바란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신사라고 하니..정말 오래된 신사이다..

'일본-기타큐슈&시모노세키 > - 19.05.29 ~ 06.0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후모리 저택  (0) 2020.04.18
미야노우치초  (0) 2020.04.17
간몬대교  (0) 2020.04.17
조선통신사 상륙 기념비  (0) 2020.04.11
아카마신궁 -Akama Shrine, 赤間神宮(적간신궁)  (0) 2020.04.11




간몬교

일본 야마구치현[山口懸] 시모노세키[下關]와 후쿠오카현[福罔縣] 기타큐슈[北九州] 모지[門司] 와의 사이에 있는 간몬해협의 최협부를 이루는 하야토모노세토[早第備戶]에 있는 다리로, 길이 1,068m, 폭 26m인데, 1968년 4월에 착공해서 1973년 11월에 개통하였다.

길이 1,068m, 폭 26m이다. 혼슈[本州]와 규슈[九州]의 두 종관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간몬 자동차도의 현수교로, 만조면(滿潮面)으로부터의 높이는 중앙부에서 61m에 이르러 대형 선박의 통과가 가능하다.

간몬 국도 터널의 혼잡을 해소할 목적으로 1966년부터 조사를 시작하여 1968년 4월에 착공해서 1973년 11월에 개통하였다. 일본 대교 건설의 선구적 역할을 한 이 다리는 1944년에 개통한 간몬 국도 터널에 이어 혼슈와 규슈를 잇는 제2의 동맥 기능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초후모리저택으로 가기전 버스안에서 웅장한 모습에 반해 찍어보았다..
간몬대교 말고 해저터널로 가면 저번에 조았던 모지코로 나가진다..해저터널은 사람은 무료이고 자전거는 요금을 받는 걸로 알고 있다..


조선통신사란..

조선시대에 국왕이 일본 막부(幕府) 장군에게 파견한 공식 외교사절. 15세기 초에 조선과 일본은 서로 사절을 파견하는 외교체제가 이루어졌다. 조선 국왕과 일본 막부 장군은 양국의 최고통치자로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사절을 서로 파견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때 조선의 사절을 통신사, 일본의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통신(通信)’은 두 나라가 서로 신의(信義)를 통해 교류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초기 조선에서 파견한 사절의 명칭은 ‘보빙사(報聘使)’ ‘회례사(回禮使)’ ‘회례관(回禮官)’ ‘통신관(通信官)’ ‘경차관(敬差官)’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통신사란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413년(태종 13년) 박분(朴賁)을 정사(正史)로 한 사절단이었지만, 중도에 정사가 병이 나서 그만 중단되고 말았다. 그후 교토(京都)에 있는 막부까지 다녀온 첫 통신사는 1429년(세종 11년)에 박서생(朴瑞生)을 정사로 파견된 사절단이다.

역대 통신사의 파견은 양국 정세의 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목적을 달리했는데, 임진왜란 이전에는 왜구의 소요 등에 대한 금지 요청이 위주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강화와 포로의 생환이나 일본 국정의 탐색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1636년(인조 14년)부터는 막부 장군의 즉위를 축하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이때부터 통신사 파견 절차는 대체로 정형화되었다. 즉 일본에서 새로운 막부 장군의 습직(襲職)이 결정되면, 조선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쓰시마 도주(對馬島主)는 막부의 명령을 받아 통신사청래차왜(通信使請來差倭)를 조선에 파견한다.

그러면 조선 조정에서는 중앙관리 중 정사 · 부사 · 서장관(書狀官)을 임명하여 300~500명으로 구성되는 사절단을 편성한다. 여정은 한양을 출발해 부산까지는 육로로 간 뒤 거기서부터는 쓰시마 도주의 안내를 받아 해로로 쓰시마섬을 거쳐 시모노세키(下關)를 통과해 일본 각 번(藩)의 향응을 받으며 오사카(大阪)의 요도우라(淀浦)에서 상륙한다. 여기서 육로로 조선 전기에는 교토까지, 후기에는 더 멀리 도쿄까지 행차한다. 사절단이 지나가는 객사에서는 시문(詩文)과 학술의 필담창화(筆談唱和)라는 특이한 문화교류 행사가 거행되곤 한다.

막부 장군에게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기까지는 대개 6개월~1년이 걸린다. 사절단은 방문하는 곳마다에 서화나 시문 등 작품을, 일본 측은 또 나름대로 환영 병풍이나 판화 같은 작품을 남겨놓았다. 사절단마다 귀국 후 일본 현지 견문록을 남겼는데, 그것이 『해행총재(海行摠載)』란 견문록 문집으로 엮어져 당시 한 · 일 두 나라간의 외교와 교류의 실상을 전해주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아카마신궁 바로 앞에 있다.
같이 둘러보면 좋을거 같다.

+ Recent posts